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助詞와 싸우다 - 이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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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함안예총 댓글 0건 조회 1,024회 작성일 2009-07-16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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助詞와 싸우다 - 이상규



   시인들은 조사(토씨) 하나를 두고도 고민과 퇴고를 거듭한다. 시인 정일근은 그 과정을 ‘조사와 싸우다’라는 시에서 토로하고 있다. “내 시작의 버릇 하나를 말하자면/ 시를 퇴고할 때 조사를 추려 내는 것/ 예를 들자면 이렇다, 이 시의 첫 문장/〈내 시작의 버릇 하나를 말하자면〉을 두고도/ 나는 오랫동안 고민할 것이다/〈의〉라는 조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내 시작 버릇 하나를 말하자면〉으로 고치거나/〈를〉이란 조사가 불편하면/〈내 시작의 버릇 하나 말하자면〉으로/ 고칠 것이다. 그 두 문장을 두고/ 밀고 당기고 여러 날을 끙끙거릴 것이다/ 이 버릇은 사실 조사와 싸우는 일/ 지난여름에는 시집 한 권을 묶으며/ 시 속에 별처럼 뿌려진 조사와 싸웠다/〈은〉〈는〉〈이〉〈가〉〈을〉〈를〉을/ 죽였다 살렸다, 살렸다 죽였다/ 만나는 조사마다 시비를 걸며 싸웠다(후략)”

  조사는 체언(주어나 목적어)이나 부사, 어미 따위에 붙어 그 말과 다른 말과의 문법적 관계를 표시하거나 그 말의 뜻을 도와주는 품사로 격 조사, 접속 조사, 보조사로 나눈다. 걸림씨, 관계사, 관계어 등으로 말하기도 한다. 말이나 문장에서 사람이나 사물의 상황과 행위와의 관계를 표현할 때 조사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앞뒤의 낱말을 연결시켜 관계를 설정해 주는 조사를 잘못 사용할 경우 뜻이 왜곡되거나 의미 전달이 제대로 안 될 수도 있고, 비록 어법상 맞게 쓰였다 해도 읽는 사람이 제 입맛에 맞게 해석을 달리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조사 하나로 인해서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조사와 싸운다는 시적 표현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조사 하나 때문에 300억이 날라 갈 뻔한 언론보도가 있었다. 2001년 신항만건설 사업을 수주한 국내의 A사가 유럽의 기업 B사에 항만 준설을 맡겼다. 그로부터 3년 후에 두 회사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다. 국세청이 B사의 초대형 준설선에 대해 국내의 고정사업장으로 인정하고 300억원대의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를 매긴 것이다. B사 측은 ‘준설공사를 맡긴 A사가 내야 한다’고 하고 A사는 ‘B사에 부과된 세금을 왜 우리가 내야 하느냐’로 맞섰다. 결국 두 회사는 2007년 5월 국제상업회의소(ICC)의 국제중재법원을 통해 중재 절차에 들어갔다.

  문제는 계약서 내용에 ‘어떤 모든 원천징수세도 A사가 부담 한다’라는 문구였다. B사는 조사 ‘도’를 ‘또한(also)’의 의미로 보고 ‘원천징수세 또한 A사가 부담 한다’는 뜻인 만큼 ‘원천징수세가 아닌 다른 세금도 A사가 내야 한다’로 해석했고 A사는 강조의 의미로 ‘원천징수세만 부담 한다’는 뜻이라고 되받았다. 간단한 세무상식으로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는 사업체가 소재한 곳에서 자산규모와 사업소득에 의해 일정률로 부과하는 세금이다. 국내의 대형로펌과 국제변호사를 대동한 B사가 이를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맥상의 사소한 의미 차이도 짚어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서구인들의 일상화한 사고방식 아닌가. 외국인으로 구성된 국제중재법원은 이 미묘한 문법해석을 동시통역사의 의견까지 참고하여 결국 A사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런데 문제의 문구는 해석상의 오해를 불러 오기에 충분하다. 보기에 따라서 꼭 외국어를 서툴게 번역한 것 같은 ‘어떤 모든’이란 군더더기 말은 왜 넣었을까. 이 낱말을 뒤의 ‘도’와 연결하면, 우리말이 서툰 B사로서는 ‘모든 세금은 당연히 A사가 부담 한다’로 해석할 수 있는 소지를 이 조사 하나가 제공한 셈이다. 전문가에게 계약서를 한 번이라도 검토하게 하였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조사는 경첩과 같은 것이다. 문설주와 문짝을 연결하는 경첩이 바르게 달리면 아귀도 맞고 잘 열리지만 그렇지 않으면 삐걱거린다. 동양적 사고체계와 의사전달에 익숙한 우리는 이심전심이란 말을 잘 쓴다. 마음으로 통하는 것이 최상의 소통이며 눈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다는 믿음이다. 돈 안 되는, 이미지로 읽는 시에서도 조사 하나의 취사(取捨)를 두고 몇 날을 고민하는데 먹고 먹히는 시장에서 이런 무언의 소통을 믿었다면 너무 순진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무심했던지.

(함안예총회장) 2009.7.18-경남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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