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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대 - 이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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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함안예총 댓글 0건 조회 1,107회 작성일 2009-06-2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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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예총 이상규 회장은 2009년도 경남신문 칼럼필진으로 위촉되셨습니다.
이 글은 2009. 3. 21 경남신문 '토요마당'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복대 - 이상규


 복대(腹帶)는 허리 수술을 하였거나 부실한 척추를 받쳐주기 위해 허리에 두르는 띠를 말한다. 때로는 노인들의 허리에 둘러져 허약한 상반신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머니도 그런 복대를 두르고 사신다. 어느 날 가실 데가 있다며 채비를 하시는데 배 안쪽에 돌돌 말은 수건을 덧대고 복대를 두르신다. 야윈 체격의 어머니는 뱃집이 없어서 자꾸 앞으로 숙어지기 때문에 그걸 복대 안쪽에 대고 두르면 그나마 힘이 된다는 것이다. 복대 안쪽에 감춰진, 어머니의 뱃집을 대신하는 그 수건의 소용을 그제서야 알았다. 그렇게 꼿꼿하던 허리가 점점 기역자로 굽어지는 것을 나이 들어 그러려니 하고 예사로 보아 왔는데, 그것이 다만 비워진 뱃집 때문일까.

  통계청이 발표한‘2008년 한국사회지표’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전체의 10.3%인 501만 6000명으로 나타났다. 이중 20%가 자녀와 따로 살아 가족이나 이웃과도 전혀 교류가 없는‘고립형, 삶을 살고 있고, 자녀는 만나지만 친구나 이웃과도 접촉하지 않는 노인도 64.6%가 된다고 했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 자료대로라면 노인인구의 84.6%가‘소외의 삶,을 살고 있다는 풀이가 된다. 또 딱히 이 자료에 대입시킬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가구 중‘나홀로 가구’가 다섯 집 가운데 한 집 꼴(20.1%)이란다. 아마도 이 수치 속에는 노인가구가 상당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이들 중 생계를 걱정해야 할 노인가구는 또 얼마나 많을까.
 
  이 소외된‘나홀로 가구’에는 대부분의 우리들 부모님 세대가 포함 되어있다. 가진 기술도 재산도 없이 그저 억척같이 일하고 자식들 뒷바라지에 한 평생을 다 보냈다. 다들 워낙 강단 있는 성정이어서 다행스레 자식들은 어긋나지 않아 밥은 먹고 살도록 기초를 닦아 주었다. 객지 나가 공부하는 손자 손녀들 따라가 거두어 주고 무언가 자기 몫을 하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어느 듯 손자들도 다 자라 제 일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고 나자 역할도 없어지고 뱃집도 허해졌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있어야할 텐데 그게 사라진 것이다. 우리가 기껏 할 수 있는 말은 이제 좀 편히 쉬시란 말 뿐이다.  

  움켜쥐고 있을 곳간 열쇠도 없고 다달이 들어오는 연금도 없다. 불을 땔 부엌도 김을 뿜어 올리던 무쇠 솥도 없어졌다. 무명베를 마름질해 밤새우던 바느질거리도 없어지고 빨래터에 이고 갈 빨래감도 세탁기에 빼앗겼다. 모내기 때나 타작할 때 거들고 싶어도 이마저도 요란스런 기계소리가 가까이 오지 말란다. 세상은 어느새 나와는 동떨어져 딴 천지가 되어 버렸고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눈길 마주치는 사람도 없으니 다만 양지쪽 담벼락에 기대어 오가는 사람들만 바라다볼 뿐이다. 전통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핵가족화로 기존의 다층가정은 급속히 무너졌다. 선진국의 사회학자도 부러워하였다는 한국의 대가족제도는 이렇게 속절없이 무너져 버렸고 노인들만 따로 동그만이 남은 것이다.

  매미껍질 같이 가벼운 어머니는/ 뱃집이 없어 자꾸만 앞으로 숙어진다/ 평생을 저울에 단 듯한 작은 밥공기/ 강단 하나로 꼿꼿하게 살아 왔는데/ 그동안 배를 채운 것은 허기였을까/ 이제는 허기마저 빠져나가/ 여든네 해를 비워서 접힌 뱃구레에/ 수건을 돌돌 말아 뱃집을 만들고/ 복대를 둘러 삭신을 지탱한다/ 자식도 채워주지 못하는 빈속을/ 대신 채워주고 받쳐주는/ 나를 휘청거리게 하는 어머니의 복대. -시‘복대, 전문 -

  뱃집이 없어 자꾸만 앞으로 숙어지는 어머니도 몇 해 전부터 옛집에 따로 계신다. 아파트 생활이 무엇보다 사람구경 하기가 어려워 영 마음에 들지 않으신단다. 말은 그리 하시는데 속내를 다는 읽을 수가 없다. 함께 살면서도 채워드리지 못한 그 무엇이 있었을 게다. 뱃집을 대신할 수건을 돌돌 말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무엇으로 공허한 어머니의 뱃집을 채워드릴 수 있을까. 가까이 계시기에 아침저녁으로 들르지만 마음은 영 편치 않다. (시인,함안예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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